주말 이야기. by 짜짜라

  그 동안 심적으로 너무 처져 있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이든 간에 변화가 필요했다. 때마침 동아리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동아리 연중행사가 있으니 시간 있으면 와 달라고 했다. 다른 때였다면 가지 않았겠지만,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춘천으로 떠났다.
  춘천가는 기차를 탔다. 이동이 자유롭고, 다리를 편하게 뻗을 수 있는 통로쪽 좌석을 선택했다. 창 밖 풍경 따위는 질리도록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자리를 바꾸자고 부탁했다. 아무렴 어때. 바꿔 주었다.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에서는 항상 듣던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팟 휠을 조작했다. 기차에서 들으려고 다운 받아 놓고 그동안 듣지 않았던 앨범을 재생했다. 하나레구미의 앨범이었다. 첫 곡은 音타임. 창 밖을 보았다. 아. 젠장. 멋지잖아.
  아이팟의 곡 목록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재생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곡을 音타임으로 시작해 이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곡들을 붙여갔다. 어중간한 목록이 만들어졌다. 총 17곡. 곡 수도 어중간했다.
  CD가 사고 싶어졌다. 습관이 아닌 진심으로 사고 싶어졌다. 북오프 신촌점이 오픈했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조만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춘천에 도착했다. 그 날 따라 추운 것인지 아니면 춘천이 유난히 추운 것인지 한기가 느껴졌다.
  남춘천 역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5분. 그 동안 본 풍경들은 아주 사소하지만 바뀌어 있었다.
  나에게 연락을 주었던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애와 통화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10분 정도면 도착할거야. 석재 5층 카페로 오세요. 응.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니 떠올랐다. 석재카페가 어디였더라? 다시 전화를 걸어 물어볼까 생각하다가 일단 학교까지 가보기로 했다. 학교에 도착했다. 자갈 밭이던 대운동장에 잔디가 깔려있었다. 우와... 대운동장 옆에 석재카페가 있었다.
  석재 건물을 오르다 보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거의 2년 만에 만나는 사람. 1년 만에 만나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들을 보러 갈 때는 항상 긴장이 되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신입생들과 처음 보는 선배들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 중에 내가 좋아하던 누나가 있었다.
  어? 민규! 오랜만이네! 너 왜 이렇게 말랐어? 살 뺐거든요. 얼마나? 25킬로요. 으에에! 그래서 지금 몇 킬로야? 65킬로죠. 어떻게 뺐는데? 냅다 달렸죠. 달리면 빠져? 네, 달리고 먹는거 줄이고. 근데 누나도 말랐는데요? 에휴.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지. 간단한 잡담을 끝내고 진행중이던 행사에 집중했다.
  행사가 끝나고 닭갈비 집으로 이동했다. 닭갈비 집으로 가는 도중에 친하던 선배들과 그 누나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살 빠진 얘기, 여기 저기가 변한 학교 얘기, 그럼에도 변함 없는 학교 얘기.
  너 공익 언제 끝나? 내년 초면 끝나요.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몇 달이나 남았구나. 저한텐 몇 달 밖에 안 남은거예요. 너무 걱정없이 태평해서 복학하는게 걱정이라니까요. 그럼 군대를 가지 그랬니? 그럼 복학하고 싶어질텐데. 하하하 제가 미쳤어요? 근데, 누나는 요즘 뭐 해요? 졸업 했죠? 응, 나야 뭐 백수지...... 그냥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어. 아... 그럼 공부 열심히 해야지 이런데 오면 안돼요. 시끄럿! 안 그래도 학원 수업 빼먹고 왔다. 오. 모범생이네요. 응. 모범생이지.
  그 누나의 꿈은... 신문기자였다.
  닭갈비 집에서는 서로 얼굴을 익히자며 잘 모르는 사람끼리 섞여 앉았다. 내 옆에는 좋지 않은 소문으로 자주 들었던 K선배가 앉았다. 소문의 내용으로 보아 걱정이 앞섰지만, 일단 비유를 맞춰주기로 했다. 동아리 선배와 후배가 할 법한 대화를 하다가 야구 얘기가 나왔다. 어? 선배 야구 하세요? 어, 너 야구 좋아하냐? 네, 좋아해요. 야구 얘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생각보다는 좋은 선배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자리를 바꿨다. 내 옆에는 나에게 연락을 했던 후배가 앉았다. 성격이 좋은애 답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선배 참 슬림해졌네요. 그래, 너도 이뻐졌다. 얼굴에 뭐 좀 발랐나보군? 네, 좀 발랐죠. 후배는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내 무릎이나 팔을 툭툭 쳤다. 아줌마적 스킨쉽이 많은 아이였다. 너, 웃기거나 그러면 옆 사람 막 때리지? 네. 왜요? 아니, 그럴 것 같아서.
  2차는 막걸리집이었다. 닭갈비 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 마시며 상당히 취해있던 나는 위기감을 느꼈지만, 막걸리가 너무 맛있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막걸리집에서는 신입생이지만 3수를 해서 나와 동갑이라는 후배가 내 옆에 앉았다. 나 이상으로 말이 없는 놈이었다. 거기에다 시니컬하기까지 했다. 우리 동갑인데, 말 놓죠. ......지내다 보면 알아서 놓겠죠. 우와 힘들다 힘들어.
  회장 후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내 옆에 잠시 앉았다. 야, 너 아까는 진짜 예뻤는데, 술 마시니까 불었다. 선배 나랑 한 판 붙어 보실래요?
  3차는 동아리 방이었다. 안주는 춘천에서 밖에 먹어보지 못해 무척이나 그리워 했던 김치피자탕수육이었다. 하지만 몇 점 집어 먹다가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속이 너무 안 좋았다.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를 생각 없이 들이켜 댄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달려가서 변기를 잡고 토를 했다. 이게 얼마만에 하는 술 토인가. 반갑기도 했지만 역시 토 하는 것은 괴로웠다. 내용물을 어느 정도 빼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변기에 걸터 앉아서 잤다.
  민규야? 이 안에 있어? 토해? 야구 이야기를 나눴던 선배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네, 여기 있어요. 토 했어? 네... 
  동아리 방에 들어와서 앉았다가 토 기운이 올라와서 다시 화장실로 갔다. 이 짓을 몇 번 반복하고 동아리 방에 누워서 잠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 7시 반이었다. 동아리 방에는 지저분하게 어질러진 술자리 흔적과 야구 선배가 자고 있었다. 숙취가 느껴졌다. 하루종일 갈 것 같은 숙취였다. 일단 세면도구를 꺼내 이를 닦고 찬 물에 세수를 했다. 집에 갈까 남아 있어 볼까를 생각하다가 이 숙취로는 아무 것도 못 할 것 같아서 집에 가기로 했다. 그 전에 술자리 흔적을 정리했다. 성격상 그런 것이 남아 있는 것은 못 본다. 정리를 마칠때 쯤 야구 선배가 일어났다. 어. 너 괜찮냐? 네, 괜찮아요. 근데 저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 그래. 그럼 빨리 가봐. 다음에 또 보자. 네, 또 봐요. 안녕히게세요. 응 잘가라. 설명하기 귀찮아서 거짓말을 했다.
  남춘천 역으로 가는 도중 편의점에 들려 생수와 컨디션을 샀다. 역 앞에서 컨디션을 들이키고 물을 마셨다. 마침 기차는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집에 빨리 갈 수 있겠구나.
  기차 안에서 두 번 토했다. 물과 컨디션도 다 토해 내었다. 4,600원을 변기로 흘려 버렸다.
  성북 역에서 전철을 타고 의정부까지 오는 중에도 토 기운이 올라왔다. 다행히 속이 비어 있어서 헛 구역질로 끝났다.
  집에 와서는 하루 종일 골골댔다. 먹은 것은 바나나 두 개, 감 한 개, 귤 다섯 개가 전부였다. 다른 것은 먹으면 토할 것 같았고, 토했다.
  숙취와 함께 주말은 끝이 났다. 이번 주말을 지내며 얻은 것이 있다면 CD를 사자는 결심과, 첫 사랑에서 진정으로 졸업했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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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국화 2009/10/20 16:56 # 답글

    아 재밌어요 - 소설 잘읽었습니다 :)
  • Run192Km 2009/10/20 16:57 #

    아악!! 1분차이로 지다니..ㅡㅜ
  • 짜짜라 2009/10/21 23:17 #

    음.. 소설 아님.

    기행문 인가??
  • Run192Km 2009/10/20 16:57 # 답글

    좀 한산할 때는 통로쪽도 괜찮아. 다리도 둘다 쫙 펴기 더 수월하고.
    그런데 사람 좀 많으면..툭툭 치고 뭐 장난 아니지.

    근데 난 아직도 모르는 사람 3인과 마주보며 춘천가던게 기억에 남네..
    기차탈 때마다 떠오를꺼야..-_-;;

    신문기자가 꿈이였던 누나가 첫사랑인거임?'ㅅ'/
  • 국화 2009/10/20 20:09 #

    지금 사랑중이심 ? :)
  • 짜짜라 2009/10/21 23:18 #

    모르는 사람 3인... ㄷㄷㄷ.
    그 누나가 첫 사랑이죠.
    /
    지금 안 사랑중.
  • 폭발한고구마 2009/10/20 20:19 # 답글

    Newyork I love you, but you bring me down이라는 노래를 추천하지.
    (가수는 LCDsoundsystem? 어쨌든 LCD임)
    그리고
    첫사랑에 졸업따윈 없다.
  • 짜짜라 2009/10/21 23:24 #

    '아.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졸업이지 뭐.

    LCD~ 앨범 하나 가지고 있는데, 앨범에는 없는 곡이군.
    얘네가 이런 곡도 했었구나. 댄서블한 음악만 하는줄 알았는데.
  • 현우 2009/10/23 01:11 # 삭제 답글

    짜라군 글은 읽을 때마다 참 재밌다~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네요 ㅋㅋ 오오!
  • 짜짜라 2009/10/24 00:33 #

    오우~ 캄사캄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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